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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과 홍기빈을 생각하며

2013.10.23 00:33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선대인과 홍기빈을 생각하며

 

은퇴를 몇 년째 고민하다. 이제야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자연인으로서의 내 삶이 끝나지는 않겠지만, 경제학자로서 맨 앞에 서 있는 순간은 이제 내려놓으려고 한다.

보통은 한사경이라고 부르는, 1988, 한참 한국 사회가 격변기에 만들어진 학회가 하나 있다. 좌파 혹은 사민주의 학자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나의 기쁨과 즐거움을 모두 같이 한 곳이다. 그곳에서 대학 시절 나는 학자가 되고 싶었고, 여전히 기회만 되면 가는 곳이 한사경 학회이다.

 

한 가지 아픔은, 나와 동기인 최정규 교수, 우리가 여전히 이 학회의 막내라는 점이다. 후배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학회가 그들의 삶에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에, 취직할 때가 되면 학회를 떠난다. 그래서 여전히 나와 정규가 막내뻘이다. 우리가 86학번이다. 2013, 세상을 얘기하기에는 아주 곤란한 구조이다. 그래도 남 탓은 안한다. 난 내가 좌파인 것에 아무런 불만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내가 어려움이 없다는 것, 이 이상으로 고마운 일은 없다.

 

그렇지만 평생을 이렇게 살기는 어렵다.

 

매일 싸우면서 살기는 어렵다. 그리고 누군가를 증오하면서, 그렇게만 살기도 어렵다.

 

그리하여 적당한 순간, 나는 내가 하던 역할과 기능을 누군가에 넘겨주고, 그렇게 은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은퇴라는 말, 이것도 웃기는 얘기다. 가진 게 별로 없는 데, 뭘 넘겨주겠나.그냥 내가 믿을 수 있다는 간략한 코멘트, 그게 다 아니겠는가?

 

하여간 경제학자로서 내가 생각했던 세계관을 나름대로 같이 공유했던 것은 선대인과 홍기빈이다.

 

기빈이나와는 동갑이다. 그리고 그는 노래를 아주 잘 부른다. 재능이 정말 많은 친구이다.

 

학위는 늦게 받았지만, 경제학에서 인류학 사이에서 많은 것을 같이 고민했던 친구가 기빈이다.

 

그리고 선대인

 

경제학 전공은 아니지만, 주택 가격의 흐름을 비롯해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입다물고 있던 주제에 대해서 거칠 것 없이 자기 얘기를 했던 친구이다.

 

누군가 관심을 가졌던, 관심을 갖지 않았던, 하여간 내가 한국 사회에서 했던 기능들이 있다.

 

이젠 그걸 내려놓고 그냥 자연인으로, 그냥 사회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기능적으로 가능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대인이와 기빈이를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다음 시대를 기원하고 싶다.

 

선배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내가 가진 모든 애정을 그들에게 남겨주고 싶다.

 

진정으로, 그들이 있어 행복하다는 게, 나의 본심이다.

 

 

Comment

  1. 아쉽네요 2013.10.23 00:50 신고

    이십대 때 답답하기만 하던 저에게는 88만원세대 와 '샌드위치위기론은 허구다'라는 책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 주었어요. 그리고 샌드위치 읽던 즈음 취업 준비생이었는데 그 때 '삼성을 말한다'라는 책이 세상에 나오고 시사인에서 난리이고.. 근데.. 센 넘들은 더 점점 세지고 있네요...
    살면서 어떻게든 이 땅을 벗어나고 싶다. 외국나가서 살고 싶다 간절한데.. 가끔 박사님 책들을 보면서 왜 여기에 남으신건지 이해가 안될 때가 있어요... 제가 외국 생활을 겪어보지 못해 또 마냥 환상만으로 보는 것도 있겠죠.
    제가 수학을 못하는 가난한 여학생이었어 가지고.. 수학을 잘 했으면.. 항상 인생 살면서 그게 어려웠는데, 그런 거 고민하신다는 글도 보면서... 정말 이 땅의 소수자가 누군인지 많이 고민하시고 사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건 지식이나 재능이 아니라 지혜인 것 같아요. 레모니 스니켓의 책을 좋아하시는 것도 좋고 반지의 제왕 정리도 좋았고..
    난민으로라도 정말 이 나라를 떠났으면 간절히 소망하는 나날을 살아 가네요...
    아무튼 책은 계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블로그에 글이라도.. 동시대에 살아서 감사한 존재세요 ㅎ

    • 하여간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그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든 교감과 소통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먹고 살만하지 않은 사람들, 그들과 저는 늘 같이...

  2. 힘내세요 2013.10.23 08:41 신고

    은퇴를 각오하고 선구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신듯보여 감사하고 또 돕지못해 그저 죄송합니다..

  3. 황해원 2013.10.23 09:50 신고

    88만원세대 이후로 항상 여러 생각을 던져 주셔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직 지켜 주셔야 할 가치들이 많으리라 생각하기에 항상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부터 명랑하게,,,

  4. 퐁퐁 2013.10.24 00:01 신고

    23살 방황하고 있는 청년으로서 우석훈 선생님을 존경합니다.행복하게 사세요.

  5. 손철웅 2013.10.26 11:42 신고

    항상 일반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저 넘어'의 부분을 떠올리게 하시는 사고의 깊음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나는 꼽사리다를 통해 교수님으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운것 같습니다. 존경하고요. 다만
    그저... 자연인으로 돌아가지 마시고 조금만 더 싸워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시국이 정말 말이 아닌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6. 달빛월영 2013.11.01 00:15 신고

    선대인 소장님 요즘 여기저기 시사프로그램에서 자주 보고 있어요. 전세대란이나 부동산폭락에 대한 주제에 자주 보이시더라구요. 나꼽살 두분다 어려운 상황에 듣기힘든 바른말 해주시고, 항상 감사하고 존경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