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고등학생을 위한 에세이집 >

 

내가 그렇게 부지런히 사는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생도 아니다. 열정, 생각해보면 그런 걸 내 인생에 가지고 있었던 적이 과연 있었나 싶기도 하다. 그냥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돈 되지 않는 걸 부지런히 챙겨가면서 하니까 부지런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 양심이 너무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 했던 약간의 소란스러움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누가 딱 봐도 출세나 성공과는 아무 상관 없어 보이고, 오히려 윗사람들한테 찍히거나 우파들한테 단단히 미움 받을 일만 골라가면서 했으니까 좀 열정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내 마음 편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한 것도 아니다.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남들 하는 것과는 다른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인생을 낭비하고 사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대학 때는 물론이고, 나는 연애도 거의 한 적이 없다. , 인생을 낭비하고 사는 듯해 보이는 사람과 얽혀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견적서가 금방 튀어나왔을 것 같다. 입장 바꿔놓고 보면, 나처럼 진짜 돈 되는 일 피해 다니고, 성공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만 돌아 돌아 살아온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싶기도 하다.

 

매달 가지는 못해도 어쨌든 지난 몇 년 동안 중고등학교 강연은 꽤 간 건 것 같다. 다양한 방식으로 10대들을 계속 만나려고 노력했다. 초창기에 봤던 녀석들은 벌써 대학에 갔고, 군대에도 가고 유학도 가고. 좀 부지런하게 살려고 했으면 그 녀석들 어떻게든 챙겨서 계속 만났으면 나도 많이 배웠을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지는 못했고. 가장 최근에 본 친구들은 무슨 인터뷰집을 낸다고 집 앞까지 찾아왔던 고3과 고2 친구들.

 

언젠가는 ‘10대들과 대화하기정도의 제목으로 한국의 10대들에 대한 경제 인류학적 연구서를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지는 못했다. ‘88만원 세대는 초창기에 연구하던 그 10대들이 대학에 가면서 생겨난 변화 같은 거 생각해보다, 그야말로 얻어 걸린 테제라고 할 수도 있을 듯싶다. , 살면서 얻어 걸리는 것도 가끔 있어도

 

그래서 아직까지는 10대들에 대한 전격적인 연구를 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또 당분간 그렇게 할 여건이 되지도 않는다. 하고 싶은 데 못 하는 게 뭐 어디 한 두 개인가?

 

그렇지만 지난 10년도 그랬지만 앞으로 5, 정말 난리 부르스처럼 가장 큰 충격적 사건이 벌어질 곳이 바로 중등교육 현장, 바로 우리들의 중고등학교일 것이라는 점은 뻔해 보인다. 박근혜가 제대로 못 푸는 문제가 한 두 가지일까 싶지만, 하여간 교육 현장은 진짜 이상해질 것 같다. 전교조한테 교육을 너무 이념적으로 본다고 하는데, 지금의 보수주의자들이야말로 교육을 너무 이념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들의 지지자로 만들거나, 자신들의 복제품, 클론처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것처럼.

 

전 세계 어느 나라를 살펴봐도 선진국 중에서 자신의 중등교육을 자기 나라에서 한 바퀴 돌리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우리들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2세를 외국에 위탁시키는 아주 기이한 시스템을 만들어놓았다. 이게 아주 난감할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걸 뭐 일거에 고치자고 할 만한 힘도 없고, 그럴 역량도 안되고.

 

그래서 생각한 게, 중고등학생들이 읽을만한 에세이집을 한 권 준비해보는 것이다.

 

박사 논문 끝내고 약간 한가한 시간이 생겨서 내가 안 보던 분야의 경제학 저널들을 챙겨서 읽은 적이 있었다. AER에서 페다고지를 주제로 해서 학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보았던 단어 하나가 준 충격이 오래 간 적이 있었다.

 

‘otherwise bright student’에 대한 글이었는데,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다른 방식으로 똑똑한 학생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문맥상으로는 좀 삐딱한 학생이 아니라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얘기였다.

 

경제학과 1학년 첫 수업에 들어온 여성과 유색인종이, 그야말로 변수와 방정식으로 유치찬란한 첫 수업을 듣자말자, , 이건 내게 도움이 되는 학문이 아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바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야 다른 방식의 접근과 시선이 경제학에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경제학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그런 얘기였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의 공교육과 조기 유학과 딱 맞는 말이다.

 

집이 가난하거나 소외된 계층의 학생들이 딱 학교에 가자마자, 이런 나와 안 맞는군

 

그렇게 다른 방식으로 똑똑한 녀석들이 볼만한 에세이집을 한 번 써보고 싶은 게 요즘 내 생각이다. 아직 구성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고.

 

테마별로 할지, 회고식으로 할지, 그런 것도 방향을 못 잡았다. 다만 독서하는 방법, 글 쓰는 방법 그리고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쓸까 한다. 내가 하는 방식으로 공부해봐야 나보다 공부를 잘 하기가 쉽지가 않겠지만, 그 정도 공부하면 한국은 몰라도 외국에서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을 듯싶다.

 

시대가 어둡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으로, 뭐라도 좀 해볼까 싶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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