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바보 삼촌.)

 

삶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요즘처럼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도 별로 없을 듯하다. 사실, 요즘 나는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머리 속으로는 계속 이런 저런 구상들을 해보기는 하지만, 그거야말로 전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재밌다고 생각하는 일이니, 공적인 의미는 아무 것도 없는 일들이다.

 

모든 것이 공적으로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어쨌든 정말로 오랜만에 사적인 삶 외에는 하는 게 없다.

 

사적으로 아기를 아기를 돌보고 있고, 한동안 하지 않던 경제적 활동을 조금씩 시작해서, 에라, 돈이나 벌자...

 

한동안 돈 안 벌고 살았는데, 요즘은 소일거리로 조금씩 돈을 버는 중이다.

 

 

 

 

(엄마 고양이, 요즘은 마당에서 하루 종일 멍때리며 보낸다.)

 

아기 보고 있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정신 없이 흐른다. 돌 가까워지면서 아기가 벌써 두 번이나 앓았다. 집 근처에 소아과 병원이 없다. 병원 하면 가는 것도 이제는 큰 일이다.

 

아기 보는 틈틈이 전화 몇 통화 하고 나면 금새 해지고, 밤이다.

 

아내가 복직한 다음, 정말로 해야 할 집안 일이 많아졌다.

 

 

 

(바보 삼촌, 하품 중. 넉살 좋고, 표정 좋다. 이런 바보 삼촌의 인생관을 배워야 한다!)

 

하는 일도 없이 바쁘다는 게 정말 요즘의 나일 것 같다. 뭐, 절대 시간의 대부분을 아기와 보내니까.

 

아기 앞에서는 컴은 물론이고 핸펀도 켤 수 없고, tv도 못 킨다. 노트북 아니라 노트도 못 펼친다. 만년필이든 다 뺏어가버린다.

 

영화 모니터링 작업 같은 것도 물론 할 수 없고.

 

어차피 내가 할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을 포기하는 것을 요즘 배워나가는 중이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신문에 많은 글을 썼는데, 이젠 좀 내려놓으려고 한다.

 

경향신문에 한 번 남았다.

 

지방에 안 간다고 안 간다고 하면서, 거의 매주 지방에 갔다온 듯 싶다. 지난 수 년간, 늘 그랬었다.

 

지난 번 곡성 가면서, 이젠 진짜 먼 데 좀 그만 가자고 했는데...

 

다음 주에 구레에 간다. 안 갈 수만 있으면 안 가고 싶은데, 형편이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하반기에도 매주 지방에 가야할 듯 싶다.

 

오매나야...

 

내가 책상이나 스튜디오에 얌전히 앉아있는 꼴을 사람들이 못 본다.

 

현대시절이나 정부기관 시절, 그 시절에도 나는 내근보다는 지방 출장 등 출장이 훨씬 많았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살았는데,

 

그게 어쩌면 팔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스튜디오에서 방송해도 되잖아 싶지만, 나를 데려다 쓰는 사람들은 꼭 전국을 헤매고 돌아다니게 만든다.

 

생태 경제학이라는 게, 대부분의 현장이 지방이라, 이래저래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

 

 

 

 

(강북걸, 뽀샤시하게 나왔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세상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상의 모든 것들이 답답하고 갑갑해 보인다. 그 삶에서 지나치게 시니컬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인격 수양을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이나 동료를 애정으로 대하는 것,

 

아... 몸에서 언젠가 사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LG팬 10년이니 사리가 나온다고 했던가?

 

20대에는 '날선 칼 같은 삶'이라는 표현을 좋아했었다. 왠지 나도 그래야 할 듯 싶었던.

 

옆구리에 살 잡히기 시작하면서 '가늘고 길게'를 얘기하던 어른들이 심정이 좀 이해가 갈 듯하기도 하다.

 

마흔 여섯, 이제는 뭔가 벌릴 나이도 아니고, 펼쳐놓았던 혹은 펼쳐진 많은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해야 하는 나이이다.

 

하긴, 별로 펼쳐놓은 것도 없어서, 그냥 내 방만 잘 치워도 되는감?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에니메이션 작업인데, 펼쳐놓고는 뒷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아직 손도 못대고 있다.

 

요즘 나는 뭐하고 있는 거지, 그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냥 아기 돌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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