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만리> 감상문

 

<정글만리>는 간만에 나온 대하소설이다. 우연인지 김탁환의 <뱅크>도 세 권으로 되어 있었는데, 정글만리도 세 권이었다. , 별 형식적 의미는 없겠지만, 이런 대하소설들을 그냥 내리 읽기에는 나도 이젠 체력이 벅찬다. 1권을 화장실에 놓고 2주에 걸쳐서 앞부분만 깔짝거리다가 어제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 밤새고 소설책 읽는 게, 이제는 아고고

 

중국 경제에 대해서 몇 년 전에 몰아서 공부를 한 적이 있기는 했는데, 여전히 좀 모호한 구석이 있다. 중국이라고 해봐야, 북경 몇 번 갔다온 것 밖에 없으니, 그저 일반적으로 아는 것에 비해서 내가 좀 더 안다고 하기도 그렇다.

 

소설 <정글만리>, 뭐라고 할까, 큰 굴곡 없이 평온하면서도 여성적이라고 해야할까? 물론 내용은 조정래 선생 소설들이 그렇듯이 약간의 마초 감성과 과도하다 싶은 민족주의 서정 같은 게 도배되어 있지만, 그거야 이 양반 늘 그러던 거고.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여성적이고, 잔잔하다.

 

계획부도가 한 번 나오고, 야반도주가 한 번 나오지만, 일상적인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와는 거리가 멀다. 두 사건 모두 실제 상황이 벌어지는 순간에 바로 앵글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지나고 난 다음에 남은 사람들이 수습하는 것 위주로 되어 있다. 계획부도 사건은 크다고 하면 큰 사건이기는 한데, 뒷부분에 몰려서 기능적으로만 나오고, 사건의 크기만큼 폭발시키지는 않았다.

 

이 폭발이 작다고 보면 클라이막스의 기술적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게 되겠지만, 어차피 이 장면은 클라이막스가 되기는 어려운 것. 의외로 잔잔하게 상황을 풀어나가면서, 남자들이 13579로 상황을 짜 맞추고 그곳을 향해서 끝없이 몰아나가는, 그 감정 쥐어짜기와는 좀 다르다.

 

김탁환의 <뱅크>는 조선 최초의 중앙은행이 발권기능을 하려는 마지막 순간의 복수극에 3권 전체의 클라이막스가 걸려 있다. 이준익의 영화들도 그렇게 한 점을 향해서 부단하게 몰고 나간다.

 

<정글만리>는 그런 점에서는 좀 독특하다. 나는 그걸 여성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감성을 느낄 수도 있을 듯 싶다. 종합상사 부장이 나오지만, 통상적인 드라마의 주인공과는 역할과 비중이 다르다. 천 위에 몇 개의 수를 놓을 때의 공정과 비슷하다. 연결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게 반드시 하나의 사건으로 엮일 필요가 없는, 그래서 개별적이며 별도의 인물과 사건이 던져진다.

 

까틀리에의 이사 한 명이 외국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자신의 시선을 가진 등장인물로 등장하고, 나머지는 한국 사람 아니면 중국 사람.

 

그들이 부산하게 펼치는 오감도 위에 일종의 메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모택동과 등소평의 얘기가 송곳처럼 치고 들어온다.

 

솔직히 나는 과도한 민족주의라는 시각 때문에 아주 편하게 소설을 읽지는 못했다. 시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기는 한데, 조정래 선생의 민족주의 시각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나머지 얘기들에 미처 눈이 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도한 민족주의는 과도한 국가주의 만큼 사안을 불편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그렇다고 <정글만리>가 그냥 그렇고 그런 중국비하 혹은 사회주의 바보들,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기왕 이렇게 객관성을 담보로 경제 얘기에 들어갈 거면, 좀 더 편하게 민족주의 얘기는 약간 내려놓고 썼으면 어땠을까, 약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국 경제, 물론 미스터리다. 크루그만 같이 평소에는 개도국에 자성한 얘기를 많이 하던 발전주의 경제학자마저도 중국 위안화의 강성에 대해서는, 웃기지 마라, 막 소리를 질러대는 그런 특이한 소재.

 

극우파 학자이기는 한데, 기 소르망의 <중국이라는 거짓말>을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그 어느 편이든,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한다. 좀 차분하게 중국에 대해서 생각해 본 책이 너무 없었다.

 

어쨌든 간만에 대하소설, 나름 긴장하면서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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