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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블로그, 뭐든 만들어야 입에 밥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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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휴머니즘이란 뭘까?

 

휴머니즘처럼 많이 쓰이는 단어지만 그 용법이나 의미가 첨예하게 갈리는 개념도 없을 것이다.

 

영화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이라는 공상 판타지에는 “I’m just human”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온다. 녹색이 상징하는 의지의 힘과 노란색이 상징하는 두려움의 힘을 둘러싼 두 힘의 전쟁에 관한 영화이다. 물론 여기에서 human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은, 인간이 아닌 초월적 존재들 사이이 전쟁이라서 그렇다. 지구에서 human어차피 그래봐야 인간일 뿐이야라는 뉘앙스이다. 영화에서는 이걸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인간에게는 있다, 그리고 그 원천이 바로 용기이다, 그딴 얘기 되겠다. 즉 인간의 본성은 용기헐리우드 영화에서 무슨 철학 나부랭이가 있겠나 싶겠지만, 하여간 이 정도면 거의 사르트르 시절에 유행하던 실존주의 혹은 까뮈의 레토릭 같은 것을 연상하게 된다.

 

이성에 아주 많은 권한을 준 것은 데카르트 이후의 전통이겠지만, 인간에게 우주적 권한을 준 것은 실존주의자들이다. 인간의 의지, 소위 volonte에 부여된 고도한 권한은, 어찌보면 스피노자의 영향일 수도 있을 것 같고.

 

하여간 요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나는 휴머니즘이라는 얘기를 강조하던 사람은 아니다. 샤르트르를 참 좋아하던 대학 시절에는 나도 그런 용어를 종종 쓰기는 했던 것 같지만남들처럼 스탈린식의 맑시즘 해석을 열심히 읽어서 이 용어를 꺼려했던 건 아니고

 

생태주의로 오면 휴머니즘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anthropo-centrism, eco-centrism에 반하는 용어로 이해한다. Anthropo human이나, 뭐 사실 그게 그거인데, 휴머니즘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 중심의 세계관 아니겠느냐, eco-centrism이라는 측면에서는 호된 비판이 가해졌다.

 

어쨌든 연민이나 공감이라는 감정을 전제하는 것인데, 공감이라는 용어를 쓰면, 이제 또 빌헬름 딜타이에서 시작되는 해석학의 또 골 아픈. 기왕 말 샌 김에 조금만 더 얘기를 해보면, 딜타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 조선일보의 이한우 기자이다. 극좌부터 극우까지, 전부 중요한 저자라고 하면서 정작 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저자가 또한 딜타이이기도 하다.

 

하여간 요 정도가 내가 휴머니즘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이론적 배경의 거의 다라고 할 수 있다. , 엄청나게 고민을 해서 휴머니즘이라는 용어를 끌어내는 것은 아니고.

 

내가 경제 휴머니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생각한 것은, 이명박 정권 초기의 일이다. 경제 방송이라는 게, 그야말로 스테레이트성으로 오늘 주가가 올랐는데, 등등 하는 걸 제외하면 두 가지 방식 밖에는 없다. 그날 그날 현안 대처하는 것과 미리 코너를 지키고 있다가 심층 분석하는 방법. 나꼽살 때에는 폭로성으로 하지는 않겠다고는 말했지만, 사실은 현안대응 보다는 주제별로 풀어나가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나는 이 방식을 훨씬 선호한다. 그 때 그 때 따라가다 보면, 뭔가 한 것 같은데, 사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결국은 경제부처에서 내놓은 보도자료 이리저리 뒤집어보는 것 외에는 하기가 어렵다.

 

명박 정권에서, 공중파에서 뭔가 쫓아가서 심층보도하는, 그것도 경제 방송에서 해본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이템 취재 허락이 나오지도 않고, 죽어라고 한다고 해봐야 방송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게 너무 뻔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그래도 뭐라도 좀 만들어보자가 하면서 했던 말이 경제 휴머니즘이었다. 어떻게 보면, 심층취재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여러 발 물러나는 것은 아닌.

 

이 용어는 그런 맥락에서 튀어나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나서, 이번에는 방송 기획 자문 같은 역할이 아니라 아예 내 방송을 만들면서 경제 휴머니즘을 걸었다. 사실, 이번에도 한 발 후퇴인 것은 맞다. 그날 그날 터져 나오는 현안에 카메라를 들고 가서, , 이 얘기의 진짜 맥락을 얘기해보자그렇게 가는 건 아니다.

 

물론 나도 그런 걸 하고는 싶지만, 예산과 인력 등 상황이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그 대신 방송국에서 나한테 한 유일한 주문은 거대담론이다. ...그야말로 시청률 안 빠지게 생긴 구조이다.

 

그러나 이 정도가 어쩌면 이 시대에 해볼 수 있는 가장 소극적인 양보이며, 동시에 한 발 비켜선 듯 하면서 맨 앞에서 뛰어다닐 수 있는 적당한 타협점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진짜로 뭐가 경제 휴머니즘인가, 이건 나도 아직은 골똘히 생각해보는 중이다.

 

어쨌든 소수의 대기업이나 모든 것을 다 틀어쥔 승자들의 우월감 넘치는 얘기를 인터뷰라는 항목을 통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가 몇 편 만들어보면서 우리끼리 가지게 된 약간의 합의 정도라고 할까?

 

좀 더 고민해보려고 한다. 2013, 한국 자본주의에서 경제 휴머니즘이란 도대체 뭘까? 내용도 잘 모르면서 용어부터 던져놓고 안을 채워나가보려고 하니, 아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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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2013.07.11 09:29

    비밀댓글입니다

  2. 2013.07.13 10:56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