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다큐, 정말로 해보고 싶다

 

1.

연출을 왜 안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기획에 참가하는 일은 종종 한다. 내가 방송에서 주로 하는 일이 출연이나 진행이 아니라 기획이었다. 숨은 기획자로 남는 게 좋아서 숨어서 일하지만, 그런 게 참 재밌었다. 영화에서도 기획을 한다. 제작까지 하게 될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제작에 대한 제안이 온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올해 아기 키우면서 영화 제작을 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영화 연출은 안 한다. 그게 영화사 나가면서 아내와 했던 첫 번째 약속이다. 아내는 내가 영화 연출을 한다고 하면서 밖으로 돌아다니면, 오래 못 살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이유를 대지는 않았지만, 내 성격상, 한다고 하면 정말로 목숨 걸고 하기 때문에, 단명할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내가 안 한다고 한 이유는, 난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처럼 12시가 되어야 일어나고, 또 긴장이 걸리지 않았을 떄에나 머리가 움직이는 사람과는 도저히 맞춰볼 여지가 얺는 종류의 일이다. 그래서 연출은 안 한다. 여러 사람 피 말리게 하는 악덕 감독이 될 이유는 없다.

 

2.

시나리오 버전의 모피아는 여러 가지로 애착이 많이 가는 스토리였다. 만약 내가 직접 연출을 한다고 하면, 15억 미만으로 만들 수 있게, 그렇게 얘기를 구성했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한다고 했으면, 소품 형태로 펀딩도 받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난 연출은 안할 거니까

 

그래서 그걸 다시 소설 버전으로 바꾸는 작업을 작년 3월부터 시작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가슴에서 피눈물 났었다. 그러나 안 되는 걸 어찌하랴! 그게 현실인걸. 그걸 받아들이고, 시나리오에 버전의 원래 주인공들을 전면 교체하고, 새롭게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아쉬움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 아니냐?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아직은 40대 중반이다. 막혔다고 돌아가기에는, 아직은 피가 뜨겁다.

 

3.

그래서 최종 버전으로 구상한 풀 셋트가 소설 모피아의 이론적 기반이 되는 화폐경제학이론서, 그리고 그 책에 같이 딸려서 배포할 금융 다큐, 이렇게 한 셋트를 디자인했다.

 

다큐를 연출할 감독도 구했고, 싼 가격이지만 같이 할 의향이 있는 촬영감독도 어느 정도는 섭외가 되었다. 돈은, 출판사에서 일부를 대고, 나는 제작자로 참여해서 다큐 한 편을 만들어낼 준비를 했다.

 

꼭 해보고 싶었다.

 

초저예산 다큐지만, 내용과 품질만큼은 최상급인 그런 한국판 인사이드잡에 대한 구상을 마쳤고, 소설과 함께 그렇게 풀 세트를 한국 사회에 던지는 게 내가 했던 구상이었다.

 

그 때 아기가 태어났다.

 

자연분만을 늘 생각했지만, 아기 목이 걸려서 결국에는 수술을 해서 낳았다. 그 즈음에 모든 것이 섰고, 나는 기획자나 제작자가 아니라, 아빠라는 사회적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

 

소설 모피아가 뜬굼없이 덜렁 한 권이 나오고, 그 책과 매칭되는 이론서 없이 혼자 나오게 된 데에는, 아기의 탄생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뭐가 더 중요한가, 그 철학적 질문 앞에서, 나는 그냥 아빠의 삶을 선택했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렇게 태어난 아기의 100일 즈음에 대선 캠페인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4.

올해도 예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몇 권의 책이 나간다.

 

대선 마지막 해를 맞아서 세워놓고 있던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마지막 권들을 올해는 다시 론칭하려고 한다.

 

욕심을 내려고 하면 끝이 없겠지만 올해는 세워놓았던 이 시리즈를 다시 론칭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이 시리즈는 9, 문화경제학의 실패 이후 세워놓고 있는 중이다. 10권은 농업경제학이다. 농업

 

어쨌든 세워놓고 있는 시리즈를 다시 출발할 때, 나도 비범한 각오가 필요하지 않겠나?

 

문화경제학의 실패를 놓고, 참 고민 많이 했다. 그렇게 중요한 얘기인데, 이렇게 무참하게 만드는 건,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문제일까? 솔직히 이 답을 잘 못 찾았다. 돈도 많이 들였고, 시간도 많이 들였고, 정성도 많이 들였다. 근데 왜? 그 답을 못 찾았다.

 

그 다음 권이 농업이라서 부담이 너무 컸다. 간단하게 말하면, 문화 경제학도 그렇게 참패인데, 농업 경제학은 얼마나 참패할 것인가, 십중팔구! 그 부담감을 떨치지를 못했다.

 

어쩌면 그게 무서워서 내가 도망간 것인지도 모른다.

 

나꼽살 방송 내내, 농업도 정말로 밀만큼 밀었다. 모니터링해준 사람들의 조언에 의하면, 부동산이나 보험에 비해서, 별 반향 없다는 것

 

아주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벽 앞에 서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민을 해본다.

 

5.

모피아는 운이 좋아서, 드라마라도 제작의 길에 들어섰고, 영화도 제작 검토 중인 단계에 들어섰다.

 

농업의 경우는, 그렇게 소 뒷걸음질 치다가 뭔가 걸릴 확률이 사실상 0%이다. 그거야 원래 잘 알고 있는 거고

 

그래서 한 번쯤은 기획한 적이 있던, 농업 다큐를 이번 기회에 만들어서 책과 같이 배포하는

 

그걸 진짜로 해볼까,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예전에 화폐 경제학 때 기획했던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스토리 보드는 생각해둔 게 약간은 있고, 최소한 한국에서의 농업은 이래야 한다그런 방향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고, 책을 죽어라고 보지 않는 사람도 한 시간 반 동안 동영상만 보면서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게 만들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는 생각이 부드럽게 진행되는데

 

아내 복직 이후, 아기 등에 엎고 다큐 제작자로 내가 움직일 수 있는가그런 현실적인 고민에 다시 부딪히게 되었다.

 

마음 속의 에너지는 해야 한다는 게 강한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1월 말, 어쨌든 마음을 먹어야 올해 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아기 옆에 놓고 아무런 계획도 세우기가 어렵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농업 다큐는 정말로 한 번 만들어보고 싶기는 하다.

 

나한테 제작 의뢰가 왔던 영화도, 기본적으로는 농업 영화였다.

 

하여간 현실과,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1월말이 지나간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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