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왔다...

 

이 사진은 작년에, 지금의 가족 고양이를 처음 찍은 사진이다.

물론 이 시절에도 마당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그렇게 열심히 주지는 안았다.

지난 장마, 이들 부부에게서 세 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다.

가을에 정신이 좀 들어서 보니, 두 마리는 벌써 죽었고, 아들 고양이가 한 마리 남았다.

언제까지 같이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난 겨울이라도 같이 나게 해주자고,

겨울나기를 같이 준비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난 후, 아빠 고양이가 사라졌다.

전에도 가끔 안 보이던 적이 있지만, 이렇게 길게 안보인 적은 없었다.

겨울도 다 지났는데...

 

지난 가을, 아빠 고양이는 구청에 끌려가서 중성화 시술을 받고 왔다.

고양이의 중성화에 대해서, 내 생각은 좀 복잡하다.

어쨌든...

아빠 고양이는 이 가족에서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먹이가 부족하지 않게, 충분히 주었는데, 덕분에 이 가족은...

겨울을 지나면서 뚱띵이들이 되었다.

위 사진은, 돌아온 아빠의 첫 번째 사진이다.

여전히 가족이고, 여전히 친근하다.

누군가의 삶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바짝 세우면서 기다려본 적이 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정도이다.

아들 고양이.

녀석은 이 마당에서 태어났고, 이곳을 자신의 집이며, 우주라고 생각한다.

얼굴에 카레를 묻히고 다니는 녀석.

담으로 넘어가기 전, 잠시 엄마 고양이를 쳐다보는 아빠 고양이의 표정.

엄마는, 확실치는 않지만, 아기를 가지고 있는듯 싶다.

이 복잡미묘한 심경.

삶이란!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렌즈를 무턱대고 추가하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지금의 렌즈로는 도저히 무리라서 렌즈를 추가했다.

마침 다음 날, 아빠 고양이 혼자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녀석, 나름 멋진 삶을 살고 있다.

(이거 찍는다고, 나도 마당에서 구르면서 생쇼를 연출했었다.)

 

이것보다 더 부드럽게 졸고 있는 모습을 잡은 게 있었는데,

삥이 안 맞았다. 자동으로는 거의 촛점을 잡지 못해서, 대부분 수동으로 촛점을 잡는데...

나도 노안이 심해져서, 이게 고역이다.

안경 벗었다, 썼다, 아주 난리도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녀석은 이미 세 번이 겨울을 났다.

자연상태에서는, 자기 수명만큼 산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조는 모습에서 문득 내 모습을 투영해보기도 한다.

난 이 사진이 참 좋은데,

내 주변 사람들은 별로라고들 하신다.

녀석이 얼마나 더 살지, 내가 얼마나 더 녀석을 보고 있을지, 나도 잘 모른다.

고양이의 삶은, 사람보다 짧고, 길고양이의 수명은 더욱 짧다.

아빠 고양이, 녀석에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운다.

부부 고양이는 가끔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일가가 같이 지내는 것은, 나도 처음이다.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들은,새끼를 낳고 나면 어미가 도망가고는 했다.

녀석의 남은 삶이 길지는 않을 것 같다.

나도 이사를 준비하는 중이라서, 이 집에서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포획을 해서 데리고 가서, 새로운 집으로 같이 데리고 가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그게 과연 옳은 것이냐, 그 철학적 질문에 나는 순순히 답을 내지는 못하겠다.

 

그거 그 때 생각할 일...

아빠가 돌아왔다,

지금은 그걸로 기쁘다.

이렇게 우리 집 마당 고양이의 겨울나기는 끝.

이제 봄이 돌아왔다.

장마가 가까워지면, 새로운 고양이들이 태어날 것이고, 이 가족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자연이 하는 일,

인간의 개입은 최소한인 것이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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