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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워크샵

2012.03.17 01:34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평양성> 워크샵

 


타이거 픽쳐스에 출근한지 3달이 좀 넘은 것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느낀 것은, 이 집단은 지금 슬럼프를 겪는 중이고, 그것도 아주 전형적인 슬럼프.

 

이건 얘가 싫대서 안되고, 저건 쟤가 싫대서 안되고,

어렵쇼, 이건 내가 싫네

 

(영화 <오 브라더스> .)

 

하여간 사무실 분위기는 여전히 밝고 유쾌하지만, 슬럼프를 겪고 있는 집단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증상들을 가지고 있다. 자신감 결여, 뒷심 부족

 

여기에서 매일 테이블에 정말 열 편 가까운 얘기거리나 시나리오들이 올라오고, 다음 날이면 다시 또 다른 열 개

 

내가 보기에는 아주 이상한 몇 개를 제외하면 다 훌륭한 얘기거리들이고, 잠재성만큼은 100%인 것들.

 

이준익에게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오는 얘기들이, 상대편에서도 나름대로는 비장의 카드라서 던지는 거 아니겠는가? 내가 연출을 한다면, 정치적 혹은 사회적 취향과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뒤집어보면서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는 얘기들이 많다.

 

그렇지만

 

실패한 영화로 은퇴한 감독이, 한동안 쉬다가 다시 복귀하면서 만드는 복귀작이니, 이것저것 따질 것도 많다.

 

그러다보니 슬럼프가 계속 길어지고.

 

가장 최근까지 작업을 했던 것이, 대만 대중은행 광고에 나왔던 오토바이 얘기, 이걸 모티브로 시나리오 작업이 이번 주까지 우리가 집중했던 일이다.



그것도 결국 엎어졌다.

 

뭘 좀 개선해보자는 게 아니라, 그냥 좀 어렵겠다

 

사실 내년도 영화는 이미 정해졌다그건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영화이고, 여건만 되면 꼭 만들자그래서 그 사이를 넘어갈 영화 한 두 편이 필요한 건데

 

다음 번에 검토할 영화 소재는 열하일기이다.

 

내 의견은 어렵다, 의미있게 만들기가 진짜로 쉽지 않다

 

였는데, 지금까지 그렇듯이 역시 검토를 해보자고.

 

다음 주에는 나도 열하일기와 관련된 책을 전부 사서, 정말로 진지하게 검토해볼 생각이다.

 

그런 얘기 한 번도 안 했는데, 진짜로 열하일기를 할 거면, 영화 기획은 내가 해보겠다

 

(열하일기에는, 좀 복잡한 맥락들이 있어서, 어떻게 건져내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많이 다를 것 같다. 어쨌든 진짜로 한다면, 나도 진짜로 검토를 시작할 생각이다…)

 

그러나

 

그 전에 꼭 해야 하는 과정이 하나 있다.

 

영화 감독들이 원래 자기 영화 잘 안 보는데, 그래서 생겨나는 문제점이….

 

성공한 사람도 성공한 이유를 모르고, 실패한 사람도 실패한 이유를 모른다는.

 

(영화의 성공 요소와 실패 요소의 분석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아주 길게 적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길게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 타이거 픽쳐스의 지금의 슬럼프는 영화 <평양성>의 실패에서 시작된 것이다. , 나름대로는 실패의 이유들에 대해서 다들 조금씩 생각은 있을텐데, 그걸 드러내서 객관적으로 논의를 해본 적이 없다.

 

제작진마다 생각이 다르고, 배우들 생각도 좀 다르다.

 

평양성 다시 한 번 보시라고, 예를 들면, 블루레이로 새로 나왔으니, 화면질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좀 보자는 얘기 등등, 갖은 얘기로 좀 꼬셔봤는데, 안 통한다.

 

그래서 결국 일반인들이 습작 연습하고 있는 습작단에 평양성의 실패 이유에 대한 분석을 부탁했다. 나름대로는, 의견서가 나올 거다. 영화 개봉 때에도 봤던 사람들이니, 1년 후, 나름대로 생각들이 정리되어서

 

그걸 모아놓고, 한 달 후쯤 워크샵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장소도 좀 근사한, 정말 워크숍하는 듯한 회의실에서

 

일본 사람들이 정말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복기하는 일이다. 성공이든, 패배든, 늘 복기를 한다.

 

우리가 잘 못하는 게, 바로 그 복기이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노무현 시절, 왜 정권을 명박에게 넘겨주게 되었는가, 그걸 복기하는 사람을 민주통합당에서 보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늘 우리는 현재 그리고 성공만을 이야기한다.

 

좋을 때에는 그렇게 해도 되지만, 슬럼프일 때도 같은 방식으로 하면, 반드시 망하거나, 더 깊은 슬럼프로 가게 된다.

 

물론 여러 가지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감독에게, 자신이 망했던 직전 영화를 들이대면서, 이걸 좀 보자, 이건 잔인한 일이기는 하다. 학자들이, 원래 좀 잔인하다. 난 아직 평양성을 100번까지는 못 봤지만, 서른 번 정도는 본 것 같다. 난 내가 실패했던 것들을, 끊임없이 복기하는. 나의 실패든 남의 실패든, 복기하고 그 속에서 아주 작은 점들을 찾아내는 것, 그게 원래 학자가 하는 일이다.

 

하여 <평양성. 워크숍을 하나 기획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다른 일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슬럼프는 오게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물론 지난 번의 실패에 붙잡혀서 새로운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들을 찾아내서 조금씩이라도 개선하는 것이, 결국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며동시에 가장 검증된 방식이기도 하다.


(지금 보이는 이 쇼파들이 영화 <달마야 서울가자>의 룸살롱 신에 나왔던 소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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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쏘녀 2012.03.17 19:10 신고

    슬럼프일런지는 모르겠으나 사진 두 컷에 실린 그룹 분위기는 정말 좋네요.

  2. 은구상 2012.03.18 11:24 신고

    on your mark ! 꿈의 경사를 올려다보면 다가갈수 있을것같은 기분이 들어...

    덕분에 오랜만에 <온 유어 마크>를 보며 추억에 잠기고요.

    대만광고가 재밌네요.

  3. 2012.03.21 10:41

    비밀댓글입니다

  4. 예전에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과 헐리웃 영화 <거친 녀석들:Wild Hogs>를 비교하면서 어딘가에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이 광고를 보니 즐거운 인생과 거친녀석들이 모두 담겨져 있군요. 아무튼 본질은 같겠지요.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꿈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진행하시는 영화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5. 2012.07.12 13:36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