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기 위하여

 

사람은 살다 보면 지치게 된다. 지치지 않는다고 겉으로는 말해도, 인간이라는 것은 지치게 되어있다.

 

나이를 먹어가면, 누적된 피로감은 더 하다.

 

그러나 지금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보면, 그들만큼 지쳐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눈에 피로가 하나 가득이다.

 

그리고 편의점에 가면, 더 지친 영혼들을 만나게 된다. 새벽에 편의점에 잠시 들를 때마다 이 고단한 영혼을 만나게 된다. 마음이 천근만근이 된다.

 

그러나 이 중에서 더욱 지치게 만다는 것은, 절대로 지치지 않을듯한 우리들의 명박, 우리는 지금 명박 4년차를 지나고 있다.

 

여러 가지 모임과 집단들이, 사실 나만 보고 움직이는 상황에서, 별로 지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지친다, 지쳐,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 아직도 1년이나 더 남았쟎아, 이런 썩을.

 

지난 몇 년 동안, 엄청 뭘 한 것 같은 느낌이 있기는 했는데, 돌아서 생각해보면 참 부질없는 짓이고, 사실 나아진 것은 거의 없다.

 

내가 남들보다 덜 지친 것은, 어쩌면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통을 덜 느꼈기 때문이라는,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4, 개인적으로는 참 절제된(!) 소비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DJ 시절에, 앨범을 사고, 스피커를 사고, 기타 등등, 그거에 비하면 이번 정부에서는 산 물건이 진짜 별로 없다.

 

내가 입는 옷들은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산 것들이 대부분, 그냥 헤지면 헤진 대로,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버틴다. 이 정권에서 내가 가장 많이 산 것은 운동화 정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 구두도 이번 정권에서는 한 켤레도 안 샀다.

 

언제 생활비가 없을지 모르고, 어떤 일을 겪을지 모르니, 조금만 내구재에 가까운 것들은 대부분 노무현 정부 때 샀던 것들.

 

그래도 지치지 않는 건 아니다.

 

요즘 입고 다니는 가을 자켓은 총리실 시절에 입던 것이다. , 이것도 정권 2번을 거치고, 10년 되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새것을 가지고 끊임없이 소비를 해대는 것은 고양구.

 

쥐 좀 잡으려고 들였는데, 쥐는 안 잡고, 오줌만 싸댄다. 결국 세스코 불렀다, 견디다 못해.

 

그래도 지치지 않으려고 즐거운 공상을 하고, 가벼운 상상들을 자꾸 한다.

 

아직 가보지 않은 도시의 꿈 같은 산책길을 상상하기도 하고, 경제가 지금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는 그런 사회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가끔은 한나라당이 없어진 한국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상상을 멈추면, 너무너무 지치게 된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공상하고 상상하고, 자꾸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또 보지 않던 그림들을 보고 가끔은 전시회에도 가고.

 

음악회는 안 간다. 너무 관제 음악회처럼 바뀌어서, KBS 관현악단 같은 음악회에 갔다가는 더 심난하게 되고,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된다.

 

명박 2년차까지는 그래도 KBS 관현악단 정기공연 같은 것은 꼬박꼬박 챙겨서 갔었는데, 그들도 너무 나를 지치게 한다. KBS에 속한 모든 것들은, 즐거운 상상을 방해한다.

 

미술은 정부가 그만큼 장악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상상력을 지독하게 자극하는 그림들을 만나게 된다.

 

그림이 평온하게 해준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별로 돈이 되지 않는 그림을 그린 젊은 화가들의 몸부림과 이 시대를 지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묘하게 겹치면서,

 

가끔은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큰 돈 들지 않는 것 중에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명박의 숨소리를 사방에서 발견하면서, 이유도 없이 자아가 붕괴하게 된다.

 

나 혼자 지치지 않는 게 무슨 소용이람, 그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 흰 종이를 들어 상상을 하자.

 

명박 없는 세상을.

 

그리고 잠시 지친 영혼을 쉴 수 있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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